타지마할은 누가 언제 지었나? 샤 자한, 뭄타즈 마할과 검은 타지마할 전설

타지마할은 누가 언제 지었나? 샤 자한, 뭄타즈 마할과 검은 타지마할 전설

Muslim Post Editorial Desk@muslimpost

샤 자한이 뭄타즈 마할을 위해 명한 타지마할은 1632년 착공해 주 영묘가 1648년, 부속 건물이 1653년 완성됐다. 모스크·무덤·검은 타지 전설을 구분한다.

인도 아그라의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샤 자한 황제가 1631년 사망한 아내 뭄타즈 마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도록 명한 영묘 단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설명은 공사가 1632년에 시작돼 흰 대리석의 주 영묘가 1648년에 완성됐고, 모스크와 영빈관, 큰 문, 바깥 안뜰 등은 1653년까지 완성됐다고 구분한다. 사진에서 가장 익숙한 흰 건물은 모스크가 아니라 영묘다. 붉은 사암 모스크는 그 서쪽에 있다.

이 네 연도는 서로 경쟁하는 답이 아니다. 1631년은 뭄타즈의 사망, 1632년은 공사 시작, 1648년은 주 영묘의 완성, 1653년은 부속 시설까지 이어진 공사의 끝을 가리킨다. 건물을 설명할 때도 정사각형 받침대, 모서리를 깎은 영묘 외곽, 팔각형 중앙 묘실을 한 모양으로 뭉뚱그리면 안 된다. 강 건너 검은 영묘와 장인들의 손을 잘랐다는 이야기는 실제 단지와 문헌·발굴 자료가 보여 주는 범위를 따로 살펴야 한다.

샤 자한은 누구를 위해 영묘를 명했으며 누가 실제로 만들었나?

뭄타즈 마할의 본명은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이다. 우타르프라데시주 관광청의 인물 설명은 그가 1631년 6월 17일 부르한푸르에서 사망했다고 기록한다. 샤 자한은 이후 아그라의 야무나강변에 영구적인 무덤을 마련하도록 했다. “샤 자한이 타지마할을 지었다”는 말은 황제가 사업을 명령하고 후원했음을 뜻한다. 그가 건물 전체를 혼자 설계하거나 대리석 한 조각씩 직접 다듬었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건립 동기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지만, 대규모 영묘에는 왕조의 기억과 궁정의 자원도 담겼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무굴 미술 해설은 뭄타즈 사망 이후의 영묘 발주를 샤 자한 시대의 더 넓은 건축 후원과 연결한다. 개인적 추모와 제국 차원의 건설을 한쪽만 남기는 설명은 실제 사업의 성격을 좁힌다. 뭄타즈가 살아 있을 때 완공된 선물이라는 식의 표현 역시 사건의 순서를 뒤집는다.

유네스코는 우스타드 아흐마드 라호리를 주 건축가로 지목하면서 석공, 돌 절단공, 상감 장인, 조각가, 화가, 서예가, 돔 시공인 등 다양한 전문 인력이 제국 각지와 중앙아시아·이란에서 동원됐다고 적는다. 주 건축가의 이름을 밝히는 일과 집단적 제작을 인정하는 일은 모순되지 않는다. 설계, 자재 운송, 기초 공사, 장식, 정원과 수로는 서로 다른 능력과 시기를 요구했다. 후대 설명에 나오는 둥근 노동자 수를 매일 현장에 있었던 인원의 확정 명부처럼 읽어서는 안 된다.

샤 자한 이전의 무굴 궁정을 알고 싶다면 아크바르의 종교 정책을 다룬 한국어 글을 참고할 수 있다. 이는 왕조의 앞선 배경이다. 아크바르의 정책이 곧 샤 자한이 타지마할의 모든 문양을 선택한 이유라는 뜻은 아니다. 서로 다른 통치자의 제도와 한 건축 사업의 구체적 의도를 구별해야 한다.

1631년, 1632년, 1648년, 1653년은 각각 어떤 사건을 가리키나?

유네스코 페이지의 짧은 소개는 대리석 영묘에 1631~1648년이라는 넓은 기간을 쓴다. 같은 페이지의 상세한 세계유산 가치 설명은 건설 시작을 1632년으로 적는다. 앞의 시작 연도는 뭄타즈가 사망하고 건립이 결정된 시기까지 넓게 포괄한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반면 실제 공사 착수 연도를 특정할 때에는 상세 설명의 1632년이 더 정확하다. “1631년 사망”과 “1632년 착공”을 하나의 날짜로 합치면 근거가 흐려진다.

1648년은 흰 대리석 주 영묘의 완성을 가리킨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그 뒤에 모스크, 영빈관, 남쪽의 큰 문, 바깥 안뜰과 회랑이 이어져 1653년 완성됐다. 우타르프라데시주 관광청의 건설사도 주 영묘와 주변 건물의 완료 시점을 나눈다. 이 관광청 자료는 전체 사업의 시작을 “약 1631년”으로 표현하므로, 이 글은 공사의 정확한 시작을 설명할 때 유네스코의 상세한 1632년 기록을 따른다.

“22년 동안 지었다”는 익숙한 요약은 어떤 부분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셌는지 밝힐 때에만 유용하다. 황제의 결정, 부지 준비, 기초와 골조, 대리석 외장, 문과 정원은 같은 날 시작하고 끝난 단일 작업이 아니다. 영묘만 묻는 질문에는 1648년이, 전체 단지의 여러 부속 시설까지 묻는 질문에는 1653년이 함께 필요하다. 두 수치 중 하나를 골라 나머지를 오류라고 부르기 전에 “타지마할”이 어느 범위를 뜻하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완공 연도는 오늘날의 안전 상태를 말하지도 않는다. 17세기 공사 기록은 언제 무엇을 만들었는지 설명하지만, 현재 대리석이나 기초의 상태를 평가하려면 날짜와 방법이 명시된 최근의 조사 결과가 있어야 한다. 오래된 역사 자료와 현재의 공학적 진단을 바꿔 쓰지 않는 것이 이 유적을 설명하는 첫 단계다.

흰 영묘, 서쪽 모스크, 동쪽 영빈관과 정원은 어떻게 배치돼 있나?

타지마할은 우타르프라데시주 아그라의 야무나강 오른쪽 강변에 있다. 유네스코는 약 17헥타르의 무굴 정원 속에서 영묘가 강 가까운 북쪽 끝에 놓였다고 설명한다. 남쪽 큰 문을 지나면 길과 물길이 시선을 흰 돔으로 이끈다. 흔히 사진에 남는 이 정면 구도는 강가의 높인 기단, 정원, 안뜰, 문과 양쪽 붉은 건물을 모두 보여 주지는 못한다. 아그라 지방정부의 현장 설명도 이곳을 여러 건물이 함께 이루는 유적지로 소개한다.

흰 영묘의 서쪽에는 붉은 사암으로 된 모스크가 있고, 동쪽에는 형태가 비슷한 영빈관이 있다. 두 건물은 시각적 균형을 만들지만 같은 기능을 하지 않는다. 가운데 흰 대리석 건물은 추모와 매장의 장소다. 예배 공간을 가리키는 용어를 가운데 묘실에 그대로 붙이면 건물의 역할이 바뀐다. 모스크 건축 용어에 관한 한국어 설명은 미흐라브와 키블라 벽을 이해하는 배경으로 쓸 수 있으나, 타지마할 영묘의 건립 연도를 증명하는 자료는 아니다.

정원은 교차하는 길과 수로로 네 부분으로 나뉘지만 흰 영묘가 정원의 정확한 정중앙에 있는 것은 아니다. 유네스코는 무덤을 강변 쪽 끝에 배치한 점이 먼 거리에서 보이는 깊이를 크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남쪽 문에서 물과 식물을 따라 북쪽으로 걷는 경험과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서로 다른 공간 관계를 드러낸다. 건물 하나만 배경에서 떼어 내면 왜 이 위치가 선택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야무나강 맞은편에는 메흐타브 바그, 곧 ‘달빛 정원’으로 알려진 옛 정원이 있다. 양쪽 강변의 배치와 반사는 검은 타지마할 전설이 만들어지기 쉬운 풍경을 제공한다. 그러나 정원이 흰 영묘와 축을 맞춘다는 사실은 그 땅에 두 번째 검은 대리석 영묘가 착공됐다는 증거와 다르다. 실제로 남은 정원 시설과 후대에 전해진 건물 이야기를 분리해 읽어야 한다.

누가 설계했으며 기단과 외벽과 중앙 묘실의 모양은 왜 다른가?

유네스코가 라호리를 주 건축가로 적는다고 해서 여러 전문가의 참여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주 관광청은 설계와 감독을 맡은 건축가들의 팀도 설명한다. 돌을 채석해 운반하고 자르고 맞추는 인력, 붉은 사암이나 흰 대리석을 다루는 장인, 상감과 서예의 전문가가 각기 다른 일을 했다. 누구 한 명의 이름으로 모든 설계·시공·장식을 환원하지 않는 편이 자료에 더 가깝다.

재료도 사진의 한 색으로 요약할 수 없다. 유네스코는 벽돌과 석회 모르타르의 구조에 붉은 사암이나 대리석을 덧댄 방식, 대리석 표면의 부조와 유색석 상감을 기록한다. 가운데 흰 영묘와 양옆 붉은 건물의 대비는 먼 거리에서 건물의 위계를 드러낸다. 가까이 가면 꽃과 덩굴 무늬의 세부가 보인다. 아라베스크와 식물 무늬를 설명한 한국어 글은 이런 장식 어휘의 배경이지만 타지마할의 특정 문양을 누가 설계했는지 밝혀 주는 기록은 아니다.

유네스코는 세 가지 평면을 따로 설명한다. 영묘가 올라선 높은 받침대는 정사각형이다. 영묘 바깥 부분은 기본적으로 정사각형이되 네 모서리가 깎여 있다. 중앙의 큰 묘실은 팔각형이다. 네 첨탑은 받침대 모서리 근처에 독립적으로 선다. “타지마할은 팔각형인가”라는 질문에 어느 부분을 말하는지 빠뜨리면 한 사람은 기단을, 다른 사람은 묘실을 떠올린 채 서로 다른 답을 하게 된다. 기단의 모양을 묘실의 모양으로 바꿔 적는 것은 작은 표현 차이가 아니라 건축적 위치의 오류다.

무굴 궁정에서 여러 장인이 참여한 다른 예로 아크바르 시대 하므자나마 회화 사업을 다룬 한국어 글을 볼 수 있다. 이는 대규모 제작 체계를 비교하는 맥락일 뿐 그 그림책이 타지마할의 설계도였다는 뜻은 아니다. 장식의 비슷함만으로 같은 사람, 같은 공방 또는 하나의 숨은 의미를 확정할 수도 없다.

위층의 두 기념 묘표는 실제 매장 위치인가?

유네스코는 타지마할의 역사·쿠란 경전 문구가 아랍 문자로 새겨져 있어 건립 연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적는다. 글씨는 문과 영묘의 일부이며 돌 조각, 꽃 상감과 정원 계획 옆에서 경험된다. 우타르프라데시주 관광청의 건축 해설은 이 요소들의 낙원 또는 왕권에 관한 해석을 소개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글과 평면은 자료이고, 모든 꽃 한 송이에 단 하나의 의도가 있었다는 주장은 별도의 해석이다. 해석을 제시할 때에는 누구의 해석인지와 근거를 함께 밝혀야 한다.

큰 위층 방에는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의 장식된 기념 묘표, 즉 세노타프가 놓여 있다. 유네스코의 설명에 따르면 방문자가 보는 위층 묘표는 상징적이며 실제 무덤은 아래쪽 묘실에 있다. 이는 두 사람이 유적에 묻히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대리석 가림벽과 묘표를 찍은 사진이 매장 위치 자체를 보여 준다고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영묘에 있다’는 말과 ‘위층 묘표 바로 아래에 시신이 보인다’는 말은 서로 다른 주장이다.

뭄타즈의 기념 묘표는 중심축에 놓이고 샤 자한의 더 큰 묘표는 나중에 그 옆에 추가됐다. 따라서 위층 방의 두 묘표가 완전히 대칭이 아니더라도, 정원과 건물 전체가 대칭축을 중심으로 계획됐다는 사실과 충돌하지 않는다. 두 번째 매장의 흔적을 강 건너에 다른 영묘를 지으려 했다는 결정적 증거로 바꾸는 것도 무리다. 이미 있는 방에 누가 언제 함께 묻혔는지와 짓지 않은 건물의 계획은 다른 종류의 자료를 요구한다.

여기서 층과 기능을 분명히 하는 일은 관광 안내에도 필요하다. 위층의 아름다운 대리석 묘표를 ‘진짜 무덤’이라고 부르면 아래쪽 묘실의 존재를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거꾸로 실제 무덤이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숨겨진 통로’나 ‘사라진 시신’ 이야기로 부풀리면 알려진 장례 공간을 신비화하게 된다. 유네스코가 명시한 위층 기념 공간과 아래층 매장 공간을 그대로 구별하는 편이 정확하다.

강 건너 검은 타지마할과 장인의 손을 잘랐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

검은 타지마할 이야기는 샤 자한이 자신을 위한 검은 대리석 영묘를 야무나강 건너에 세우려 했다고 말한다. 주 관광청의 타지마할 이야기는 이 전설을 프랑스 여행자 장바티스트 타베르니에의 전언과 연결한다. 여행자의 글은 이런 이야기가 전해졌음을 알려 주지만, 황제의 원래 공사 명령서나 완성된 검은 건물, 확인된 기초의 기록과 같지는 않다. “계획했다고 들었다”와 “이미 지었다” 사이의 거리는 크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의 메흐타브 바그 연구 소개는 인도 고고학조사국과 함께한 7년간의 조사에서 정원 배치, 관개 시설, 정자 흔적과 팔각형 연못을 다뤘다고 전한다. 연구 결과는 그 정원이 검은 대리석 무덤을 놓을 땅이었다는 이야기와 맞지 않는다. 조사된 정원에서 발견된 물길이나 돌의 어두운 색을 검은 영묘의 잔해라고 다시 이름 붙일 수는 없다. 고고학은 조사 범위의 흔적을 밝히지만 기록되지 않은 황제의 모든 생각을 읽어 내지는 못한다.

스미스소니언 글의 서두에는 뭄타즈의 사망 연도가 1629년으로 잘못 적혀 있다. 이 글은 그 날짜를 옮기지 않고 유네스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우타르프라데시주 관광청이 뒷받침하는 1631년을 따른다. 한 기관의 글이 정원 연구의 요약에는 유용해도, 같은 글의 별도 인물 정보가 틀릴 수 있다. 출처의 명성만으로 모든 문장을 한꺼번에 승인하지 말고 주장마다 맞는 근거를 골라야 한다.

또 다른 전설은 장인들이 같은 건물을 다시 만들지 못하도록 황제가 그들의 손을 잘랐다고 말한다. 이 글에서 검토한 역사·건축 자료에는 그런 집단 처벌을 입증하는 신뢰할 만한 동시대 문서가 없다. 그렇다고 모든 장인의 노동 조건이 평등하고 안전했다는 반대 이야기를 만들어도 안 된다. 확인할 수 있는 결론은 손을 잘랐다는 특정 사건이 단단한 동시대 증거로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노동과 후원 관계는 별도의 기록으로 연구해야 한다.

오늘의 보존 상태를 2002년 보고서만으로 말할 수 있나?

타지마할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보호의 대상은 대리석 영묘뿐 아니라 모스크, 영빈관, 큰 문, 정원과 강변 경관까지 포함한다. 유네스코는 대기 오염, 방문객의 압력, 주변 개발과 유적의 모습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 필요성을 언급한다. 위험을 추적한다는 사실은 곧 붕괴가 임박했다는 선언이 아니며, 관람이 계속된다는 사실도 오염이나 마모의 영향이 없다는 증거는 아니다.

유네스코에 보관된 인도 고고학조사국의 정기 보고서는 2002년 12월 작성됐다. 작성자들은 당시 심각한 구조 손상이나 기초 붕괴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이 판단에는 작성 시점이 붙어 있다. 2002년의 관찰을 2026년 기초의 안전을 인증하는 최신 측정값으로 제시할 수 없다. 지금의 균열이나 기울기, 기초 상태를 단언하려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조사했고 누가 검토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타지마할에 대한 놀라운 주장을 접하면 먼저 세 가지를 묻는 편이 좋다. 어느 건물 또는 어느 층에 관한 말인지, 어느 연도에 관한 말인지, 무엇을 직접 관찰하거나 기록한 자료인지다. 이 질문은 뭄타즈의 사망과 착공, 흰 영묘와 붉은 모스크, 기념 묘표와 실제 매장, 정원 발굴과 검은 영묘 전설, 오래된 보존 보고서와 현재 진단을 갈라 놓는다. 답이 덜 극적이어도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이 추론인지 독자가 판단할 수 있다.

참고 자료

  1.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Taj Mahal” — 1632년 착공, 1648년 주 영묘, 1653년 부속 시설, 건물과 정원의 배치, 서로 다른 평면, 위층 묘표와 아래층 무덤, 세계유산 지위에 관한 주요 기록. 짧은 소개의 넓은 연도 범위와 상세 설명을 함께 읽었다.
  2. Uttar Pradesh Department of Tourism, “The Cause of the Taj” —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의 이름, 샤 자한과의 관계, 1631년 사망 날짜 확인. 세부 공사 일정의 단독 근거로 사용하지 않았다.
  3. Uttar Pradesh Department of Tourism, “Creation History” — 주 영묘와 바깥 건물의 완료 시점을 나누고 제작 팀을 설명한다. 대략적인 시작 연도는 유네스코의 상세 날짜와 대조했다.
  4. 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Art of the Mughals after 1600” — 뭄타즈 사망 뒤 영묘 발주와 샤 자한 시대의 건축 후원을 독립적으로 설명한다.
  5. District Agra Government, “Taj Mahal” — 아그라의 위치와 주요 건물에 관한 지방정부 안내. 둥근 노동자 수를 정확한 일별 통계로 사용하지 않았다.
  6. Uttar Pradesh Department of Tourism, “Architecture” — 재료와 배치, 상징 해석의 예를 확인하는 데 사용했다. 상징 해석을 건물의 측정 가능한 평면과 구분했다.
  7. Uttar Pradesh Department of Tourism, “The Taj Mahal Story” — 타베르니에와 검은 타지 전설의 전승을 추적한다. 검은 영묘가 실제로 건설됐다는 증거로 사용하지 않았다.
  8.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sian Art, “The Moonlight Garden Reveals New Discoveries” — 메흐타브 바그 조사와 검은 타지 이야기의 한계를 설명한다. 서두의 잘못된 1629년 사망 연도는 채택하지 않았다.
  9. 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 2002년 12월 정기 보고서 — 보고서 작성 당시의 보존 관찰로만 사용한다. 현 시점의 구조 안전을 인증하는 자료로 사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