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도바 칼리파국의 성립과 해체 929~1031년

코르도바 칼리파국의 성립과 해체 929~1031년

Muslim Post Editorial Desk@muslimpost

929~1031년 코르도바 칼리파국을 통치자, 궁정 도시, 모스크 증축과 상아 상자로 살펴본다. 1009년 내전, 1031년 제도의 종말, 1236년 도시 정복을 구분하고, 연대가 있는 건축과 명문을 박물관 기록에 연결한다. 기관마다 다른 건설·파괴 연대의 범위도 함께 설명한다.

코르도바 칼리파국은 서기 929년부터 1031년까지 존속한 정치 제도였다. 압드 알라흐만 3세는 929년에 칼리프라는 칭호를 채택했다. 내전은 1009년에 시작됐고, 제도로서의 칼리파국은 1031년에 끝났다. 강한 궁정과 군대, 궁정 도시 마디나트 알자흐라, 대모스크의 증축, 이름과 연도를 남긴 고급 공예품은 이 국가를 이해하는 구체적인 자료다. 정치적 분열로 지역 국가들이 등장했어도 사람과 건물, 문화 활동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711년 무슬림 세력의 이베리아 진출, 929년 칼리프 선포, 1031년 제도의 해체, 1236년 코르도바 정복은 서로 다른 사건이다. 통치자가 칭호를 바꾸는 일, 내전이 시작되는 일, 도시가 다른 군주에게 넘어가는 일을 구분하면 하나의 ‘종말’에 무엇을 포함할지 분명해진다. 연대가 있는 건축물과 유물을 기록한 기관의 설명을 함께 읽으면 정치사의 큰 구분을 실제로 남아 있는 증거에 연결할 수 있다.

연표에서 서로 다른 시작과 끝을 구분하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스페인 우마이야 역사를 지방 정권, 아미르국, 칼리파국으로 나눈다. 안달루시아의 공공 재단 엘 레가도 안달루시는 지역 국가와 후대 기독교 세력의 정복까지 이어지는 연표를 제공한다. 이런 구분은 어느 왕조나 제도를 설명하는지 정하는 데 유용하다. 사회의 모든 부분이 같은 날짜에 바뀌었다는 뜻은 아니다. 연도를 읽을 때는 무엇이 시작되고 끝났는지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연도·기간(서기) 사건 연대가 구분하는 내용
711년 무슬림 세력이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로 들어온다. 더 긴 지배 역사의 출발점이며 10세기 칼리파국의 성립과 다르다.
756~929년 우마이야 아미르 정권이 코르도바에서 통치한다. 왕조와 중심 도시는 칼리프 칭호보다 먼저 존재했다.
929년 압드 알라흐만 3세가 칼리프를 칭한다. 칼리파국이라는 정치 제도의 시작이다.
961~976년 알하캄 2세가 통치한다. 대모스크 증축을 포함한 칼리프의 건축·공예 후원이 두드러진다.
976년 히샴 2세가 알하캄 2세를 계승한다. 이후에는 칼리프 칭호와 알만수르의 실권을 구분해야 한다.
1009년 피트나, 곧 내전이 시작된다. 제도의 최종 종말 전에 정치적 분열이 진행됐다.
1031년 칼리파국이 끝난다. 제도의 종말과 타이파 국가들로의 전환을 구분하는 연도다.
1236년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3세가 코르도바를 정복한다. 도시 정복은 칼리파국 해체보다 훨씬 뒤에 일어났다.

이 표는 미술관의 시대 구분, 재단의 연표, 코르도바 대성당 참사회가 설명하는 건축사를 결합했다. 주요 전환점을 고른 것이며 모든 군주와 전쟁의 목록은 아니다. 왕조와 직위, 도시를 구분하면 한 군주의 패배나 한 건물의 파괴를 세 대상 모두의 종말로 확대하는 오류를 피할 수 있다. 특정 건물의 기능이 멈춘 날짜와 국가 제도의 폐지 날짜는 각각의 자료에 연결해야 한다.

711년과 929년 사이에는 200년이 넘는 간격이 있다. 무슬림 세력의 진출 이후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한 우마이야 아미르 정권이 먼저 존재했고, 나중에 칼리프라는 칭호가 채택됐다. 따라서 10세기 궁정 도시와 그곳의 고급 유물을 711년 원정 장면의 증거로 읽을 수는 없다. 사건과 물건의 연대를 나란히 놓을 때는 두 기록이 실제로 겹치는 시기를 확인해야 한다. 같은 지역의 역사에 속한다는 사실만으로 동시대 자료가 되지는 않는다.

압드 알라흐만 3세의 칭호는 무엇을 바꿨나?

압드 알라흐만 3세는 912년부터 통치했다. 929년의 칭호 채택은 이미 권력을 가진 군주의 주장이 달라졌음을 보여 준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서방 우마이야 국가를 동방의 아바스 왕조, 909년 북아프리카에서 성립한 파티마 칼리파국과 함께 설명한다. 여러 무슬림 왕조가 칼리프의 권위를 주장하던 세계였다. 코르도바의 선포를 이해하려면 경쟁하는 다른 정치 중심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이베리아에서 바그다드까지 하나의 정부가 연속해서 통치했다는 그림보다 여러 중심 도시를 가진 지도가 더 적절하다. 칭호는 코르도바에서 주장한 정통성을 보여 주지만 다른 모든 무슬림 지역이 그 군주에게 복종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칼리프’라는 말이 나오는 기록을 읽을 때는 인물과 장소, 시대를 특정해야 한다. 직위명이 같다는 이유로 서로 다른 정권을 하나의 국가로 합치면 실제로 경쟁하던 권력 관계를 놓치게 된다.

정치적 경쟁과 미술적 교류는 함께 존재했다. 미술관은 코르도바 궁정이 동지중해 궁정과 앞선 시리아 우마이야 왕조에 관련된 형식을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다른 왕조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 그 지역의 물건과 기술, 시각적 표현까지 모두 거부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 남아 있는 물건은 정치적 경계를 넘은 연결을 보여 줄 수 있다. 장식의 유사성을 발견했을 때는 통치권에 관한 주장과 제작·교류에 관한 질문을 나누어야 한다.

뉴욕대학교 고대세계연구소(NYU ISAW)는 2024~2025년 마디나트 알자흐라 전시에서 이런 환경을 다뤘다. 전시 설명에는 학자와 예술가, 외교 사절이 등장하며 국제적인 취향과 왕권의 표현이 연결된다. 여기서 사용하는 것은 이미 종료된 전시의 기록이다. 오늘 방문할 수 있는 행사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군주의 주장은 칭호에만 머물지 않고 장소와 의례, 물건을 통해서도 전달됐다.

마디나트 알자흐라는 통치를 눈에 보이게 했다

코르도바 근교의 마디나트 알자흐라는 자료에서 Medina Azahara 또는 Madinat al-Zahra로도 적힌다. 안달루시아 주정부는 도시 건설을 압드 알라흐만 3세가 칼리프로서 추진한 사업에 놓고 시작을 936년 또는 940년으로 제시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주두 소장품 기록은 936년을 쓴다. 자료는 10세기 중엽의 건설이라는 틀을 공유하면서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연도에 차이가 있다. 서로 다른 범위를 하나의 확실한 날짜로 바꿀 필요는 없다.

주정부는 궁전 구역에 군주의 거처, 고관의 체류 장소, 코르도바에서 옮긴 국가 행정 거점이라는 기능을 부여한다. 이 설명은 궁정 도시의 공간 구성을 이해하게 한다. 거주와 사무, 출입 관리에 관련된 장소들이 서로 연결된 구역에 놓였다고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석재 하나만으로 특정 방의 용도를 정하기보다는 남은 구조와 기능을 설명하는 기록을 함께 읽어야 한다. 장식이 풍부하다는 사실은 방에서 수행한 모든 업무를 알려 주지 않는다.

유네스코 기록은 궁전 밖의 기반 시설도 다룬다. 도로와 다리, 물 공급 시설, 건물, 건축 장식, 생활용품이 보존된 도시 유적을 이룬다. 정교하게 조각한 돌은 특정 공간에 투입한 자원을 보여 주고, 길과 수로는 그 공간 밖에서 도시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묻게 한다. 여러 종류의 유적을 결합하는 편이 근거 없는 부유한 도시 순위를 매기는 것보다 국가 자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궁전의 한 장면과 도시 전체의 경제 규모도 구분해야 한다.

메트 소장 대리석 주두 25.120.508은 약 960년의 건축 부재다. 주두는 기둥 윗부분을 뜻한다. 소장품 목록은 이 물건을 궁정 도시의 역사에 놓고, 유적의 조각들이 후대 교회와 세속 건물에 재사용됐다고 설명한다. 재사용은 칼리프 시대의 조각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된다. 다만 유적 전체의 재사용 역사는 이 주두 한 점이 나중에 놓였던 모든 장소를 증명하는 기록이 아니다. 일반적인 과정과 개별 유물의 완전한 이동 이력은 서로 다른 수준의 정보다.

알하캄 2세의 모스크 증축에는 구체적인 구조가 있다

코르도바 대모스크는 칼리파국 이전부터 존재했고 여러 통치자가 확장했다. 알하캄 2세의 공사는 긴 건축사 가운데 특정 단계다. 대성당 참사회는 이 증축을 962~966년으로 제시한다. 별도의 증축 설명은 예배 공간을 남쪽으로 넓힌 열두 추가 구역, 중심이 되는 마크수라와 미흐라브를 다룬다. 오늘 보이는 건물 전체를 한 칼리프가 한 번에 지었다고 보면 서로 다른 공사 단계를 구별하기 어렵다.

미흐라브는 기도 방향을 나타낸다. 참사회의 해당 미흐라브 설명은 마크수라 구역에 있는 작은 팔각형 방과 조개껍데기 모양의 돔을 기록한다. 건축 용어를 이 구체적인 부분에 연결하면 증축부의 남쪽 끝으로 시선이 모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한 건물에서 확인한 형태를 모든 모스크에 적용할 필요는 없다. 위치와 구조를 함께 확인해야 같은 용어 아래의 차이도 보인다.

네 채광부가 증축 공간을 구성한다. 하나는 그 입구에, 세 개는 미흐라브 앞에 있다. 설명에는 교차하는 아치, 대리석, 모자이크, 양식화한 식물 장식이 나온다. 이는 확인할 수 있는 건축상의 선택이다. 증축 범위를 찾아 빛과 공간이 이어지는 방식을 살피면 특정 공사 단계를 구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채광부의 수와 장식 재료를 함께 적는 편이 막연히 화려하다고만 표현하는 것보다 무엇이 남았는지 분명히 알려 준다.

잎과 덩굴의 반복으로 아라베스크를 읽는 설명은 식물 장식과 기하학 문양, 글의 구성을 나누어 보는 데 유용하다. 이 비교는 장식을 관찰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링크된 글에 나오는 후대 이집트 조각 패널을 10세기 코르도바 공방이나 제작 연도의 증거로 쓰는 것이 아니다. 각 물건의 장소와 시대는 각각의 소장품 기록에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현재의 사진에도 시대를 구분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10세기 아치, 나중에 설치한 설비, 현대의 난간이 함께 찍힌 사진은 오늘까지 남은 건물의 상태를 보여 준다. 그 사진만으로 965년 모든 예배자의 움직임을 복원할 수는 없다. 한 부재의 연대가 알려져 있어도 옆에 보이는 모든 물건이 동시대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의 촬영 시점과 사진 속 각 부분의 제작 시점을 따로 생각해야 한다.

유네스코의 코르도바 역사 지구 기록은 모스크가 13세기에 대성당으로 전환됐다고 설명한다. 현재의 건물에는 여러 시기의 역사가 함께 남아 있다. 칼리프 시대의 증축을 특정해서 살피는 일과 후대 기독교적 사용, 추가 건축을 물질적 역사의 일부로 인정하는 일은 양립한다. 한 시대의 구조를 이해하려고 다른 시대의 흔적을 없었던 것처럼 취급하면 지금의 유적이 형성된 과정도 놓치게 된다.

상아 상자에는 인물과 서체, 연도가 남아 있다

휴대할 수 있는 물건은 건물의 평면도와 다른 증거를 제공한다. 루브르 박물관은 알무기라의 상아 피크시스 OA 4068을 마디나트 알자흐라와 연결된 상아 용기로 기록하고 968년으로 분류한다. 재료는 코끼리 상아다. 아랍어 명문은 알무기라를 ‘신도들의 지도자’의 아들로 부르며 이슬람력 357년을 적는다. 목록은 서체를 쿠피로 분류하고 글이 뚜껑 아래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물건의 어느 부분에 글이 남았는지도 중요한 정보다.

목록의 대표 연도는 968년이지만 명문 설명에는 이슬람력 357년에 대응하는 서기 967~968년의 범위도 있다. 이슬람 태음력과 그레고리력에서는 한 해의 시작과 끝이 같지 않다. 새긴 연도와 목록에서 쓰는 대표 연도를 함께 남기면 작은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이 기록만으로 정확한 제작 날짜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특정 연도에 속한다는 판단과 어느 날 제작됐다는 판단은 필요한 증거가 다르다.

명문은 연대와 이름이 있는 수령인을 확인하는 강한 단서다. 그러나 상자 안에 있던 모든 물건이나 특정한 증정 의례를 알려 주지는 않는다. 재료와 글, 형태와 장식은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한다. 하나의 연도가 선명해도 사용의 일부는 미확정으로 남는다. 실제로 남은 부분의 상태와 그곳의 글을 확인한 뒤 용도와 이동 이력을 검토해야 한다. 다른 비슷한 작품이 가진 정보로 사라진 글을 채우면 개별 물건의 근거가 흐려진다.

서로 다른 안달루시아 상아 상자 세 점의 비교는 루브르 유물과 원래 뚜껑을 잃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두 상자를 다룬다. 뚜껑이 없다는 사실은 명문을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도 영향을 준다. 비슷한 상자에 OA 4068의 이름과 연도를 옮길 수는 없다. 소장 번호와 남아 있는 부분을 나란히 기록하면 비교할 수 있는 정보와 빠진 정보를 구별하게 된다.

쿠피와 다른 아랍 문자 서체를 구별하는 설명은 서체와 문장의 언어를 따로 확인한다. 글자의 형태를 알아보는 일은 내용을 번역하거나 언어를 확정하는 일과 같지 않다. 이 상자에 대해서는 루브르가 아랍어와 쿠피를 모두 명시한다. 그 기록에 연결하면 단순히 ‘이슬람 명문’이라고 부를 때보다 정확한 설명이 된다. 관찰한 모양과 소장 기관이 판독한 내용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와 학문은 사람과 제도에 의존했다

휴 케네디의 케임브리지 수록 장에 공개된 요약은 1000년 무렵 국가의 강점을 번영한 농업, 화폐 경제, 과세, 직업적 군대, 읽고 쓸 수 있는 관료 조직과 연결한다. 이런 자원이 관리와 군대를 뒷받침했다. 제도에 주목하는 설명은 값비싼 건축과 궁정 물건의 증거를 보완한다. 아름다운 작품 한 점만으로 국가 전체의 세수를 측정할 수는 없다. 물건을 만들게 한 후원과 그것을 지속시키는 조직은 연결해서 보되 같은 자료로 모두 계산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 않아야 한다.

같은 요약은 히샴 아래의 칼리프 권위와 알만수르의 실제 군사 지배를 구분한다. 칼리프의 칭호와 현실의 지휘권은 서로 다른 인물이 가질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역할을 특정하면 통치가 움직이는 방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연표에 적힌 군주의 이름은 재위 기간의 모든 행동을 그가 직접 지휘했다는 뜻이 아니다. 공적인 칭호와 실질적인 자원 통제를 구분하는 일은 이후 권력 계승을 생각할 때도 중요하다.

지적·예술적 교류는 한 궁정에만 머물지 않았다. 아이라 라피두스의 장에 공개된 요약은 더 긴 기간의 스페인 이슬람 문명을 다루며 시, 관개, 철학, 아랍어권을 거친 그리스 철학의 전달을 언급한다. 이 자료의 지리적·시간적 범위를 유지해야 한다. 후대 알안달루스의 모든 성취를 950년 코르도바에 귀속할 수는 없다. 여기서 사용하는 것은 두 장의 공개 요약이며, 그 밖의 비공개 부분을 전문까지 읽은 자료로 인용하지 않는다.

NYU 전시 기록에는 더 한정된 물질적 사례가 있다. 소개된 건축 아치의 명문은 알하캄을 계승자로, 자파르(Ja‘far)를 감독자로 명명하며 이슬람력 350년, 이에 대응하는 서기 961~962년으로 기록된다. 이름이 있는 참여자와 연대가 있는 작업은 건축을 뒷받침한 조직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다만 이것이 장인 수를 조사한 통계나 도서관의 전체 장서 목록은 아니다.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이용하면 거대한 인구나 장서 수를 확정된 측정치로 반복할 필요가 없다.

1009년과 1010~1013년, 1031년은 무엇을 가리키나?

여기서 피트나는 1009년에 시작한 내전을 뜻한다. 정치사 연표는 내전의 시작과 1031년 제도의 끝을 제시한다. 고고학적 설명은 전쟁 중 특정 도시에서 발생한 변화를 다룬다. 자료가 기록하는 변화의 규모가 서로 다르다. 연도를 나열할 때는 무엇의 시작과 종료인지 함께 밝혀야 한다. 궁정 도시의 기능이 멈추는 일과 그 도시를 건설한 정권의 최종 종말을 구분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유네스코의 마디나트 알자흐라 소개는 도시가 1009~1010년 내전으로 황폐해졌다고 설명한다. 안달루시아 주정부는 방치와 약탈의 시작을 1010~1013년으로 제시하고, 이후 석재를 가져가는 장소가 됐다고 기록한다. 두 설명은 모두 분쟁 초기에 파괴와 기능 상실을 놓는다. 다만 다른 연대 범위에서 두 기관이 기록한 단 하나의 정확한 파괴일을 도출할 수는 없다. 황폐화와 약탈, 뒤이은 재사용도 각각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이 연도들은 칼리파국의 종말을 나타내는 1031년을 대신하지 않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칼리프 시대를 929~1031년으로 구분하며, 엘 레가도 안달루시 연표는 내전에서 타이파 국가들로 이어진다. 지역 정치체는 분열 과정에서 형성됐다. 시대를 구분하는 연도가 있다고 해서 모든 지방 권력이 같은 날 독립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한 도시 유적의 파괴 연대를 전체 지역의 정치적 전환 날짜로 확대하면 서로 다른 자료의 질문을 뒤섞게 된다.

칭호와 실제 지휘권의 분리는 계승 문제를 생각할 틀을 제공한다. 국가는 강한 자원을 가지고도 다음에 누가 그것을 통제할지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정치적 대비에서 나온 해석이며 내전의 원인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연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1세기 내전의 분열, 그 뒤 1236년에 일어난 카스티야의 도시 정복이다. 정복 날짜를 1031년으로 당겨 하나의 사건으로 합칠 수는 없다. 해석의 범위와 확인한 날짜를 함께 제시해야 설명이 근거를 넘어서지 않는다.

칼리파국이 해체된 뒤에는 무엇이 남았나?

궁정 도시가 방치된 일과 대모스크가 계속 사용된 일은 매우 다른 기록을 남겼다. 유네스코는 마디나트 알자흐라를 남아 있는 도시 유적의 집합으로 설명한다. 반면 코르도바 역사 지구는 옛 모스크 안의 대성당을 포함해 후대에 변한 도시를 보존한다. 어느 쪽도 칼리파국 전체 주민의 완전한 초상은 아니지만 정치적 종말의 연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거를 제공한다. 남은 공간의 서로 다른 역사를 읽으면 국가가 끝난 뒤의 변화를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물건에도 주문한 정권 이후의 역사가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설명하는 건축 조각의 재사용은 환경이 바뀌어도 물질이 남는 사례다. 연대가 있는 피크시스는 명문이 오늘까지 남아 있어 다른 방식으로 10세기에 연결된다. 보존은 선택적이다. 여기서 다루는 건축과 궁정 소유물은 특히 지배층의 주문을 보이게 한다. 그것만으로 모든 주민의 생활 수준을 대표할 수는 없다. 무엇이 남았는지와 누구의 경험이 더 잘 드러나는지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이베리아에서 뒤에 무슬림 군주가 통치한 국가들은 각각의 시대에 속한다. 나스르 왕조 그라나다의 종말은 코르도바 칼리파국 해체보다 수백 년 뒤의 일이다. 1491년 그라나다 협정과 1492년 도시 인도 설명은 그 후대의 합의와 이후 변화를 추적한다. 두 역사를 읽으면 ‘무슬림 스페인의 종말’이라는 너무 큰 표현이 왜 1031년 코르도바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지 알 수 있다. 다른 왕조의 끝을 다루는 날짜와 조건을 각각 유지해야 한다.

가장 분명한 정리는 제도와 구체적인 증거를 연결하는 것이다. 929년은 칼리프의 주장, 1009년은 내전의 시작, 1031년은 칼리파국의 종말을 가리킨다. 궁정 도시와 모스크 증축, 연대가 있는 물건은 권위가 어떻게 표현됐고 무엇이 살아남았는지 보여 준다. 장소와 물건의 후대 역사는 제도의 끝이 알안달루스 역사 전체의 끝은 아니었음을 설명한다. 정치사를 읽는 날짜와 유물을 읽는 날짜가 만나는 지점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

  1.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스페인 우마이야 시대의 미술. 아미르국과 칼리파국의 구분, 주요 통치자, 궁정 미술의 교류를 뒷받침한다. 문명의 우월성을 표현한 수사를 수량 측정의 결과로 사용하지 않는다.
  2. 엘 레가도 안달루시 — 연표. 아미르 정권, 내전, 타이파, 1236년 코르도바 정복까지의 전환점을 제공한다. 제도 중심의 요약이며 모든 군주의 목록은 아니다.
  3. 안달루시아 주정부 — 메디나 아사하라. 마디나트 알자흐라의 건설 시작 936년 또는 940년, 거주·행정 기능, 방치와 약탈의 시작, 후대 재사용을 설명한다.
  4. 유네스코 — 메디나 아사하라 칼리프 도시. 도시 기반 시설과 유적의 보존 상태를 뒷받침한다. 해당 기록의 황폐화 연도를 유지하며 칼리파국 종말 연도를 바꾸는 데 쓰지 않는다.
  5.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주두 25.120.508. 약 960년의 대리석 건축 부재와 궁정 도시 조각의 재사용을 설명한다. 이 물건이 이후 놓였던 모든 장소를 기록한 목록은 아니다.
  6. 코르도바 대성당 참사회 — 알하캄 2세의 증축. 남쪽 추가 구역, 채광부, 재료, 건축상의 초점을 뒷받침한다.
  7. 코르도바 대성당 참사회 — 건물의 역사. 962~966년 증축 연대에 사용한다. 페이지의 큰 장서 수를 검증된 수량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8. 유네스코 — 코르도바 역사 지구. 모스크의 후대 전환과 여러 시대가 겹친 도시 역사를 뒷받침한다. 세계유산 기록으로 중세 전체 인구를 추산하지 않는다.
  9. 루브르 박물관 — 알무기라의 피크시스 OA 4068. 재료, 목록상의 출처, 수령인, 아랍어와 쿠피, 이슬람력 357년에 사용한다. 대표 연도 968년과 서기 967~968년의 범위를 나눠 설명한다.
  10. 휴 케네디 — 알안달루스와 인접 지역을 다룬 케임브리지 수록 장. 공개 요약이 경제와 군대, 관료 조직, 알만수르와 히샴의 관계를 뒷받침한다. 다른 부분까지 전문을 읽은 자료로 인용하지 않는다.
  11. 아이라 라피두스 — 스페인 이슬람 문명을 다룬 케임브리지 수록 장. 공개 요약을 넓은 문화사의 틀로 사용한다. 뒤의 여러 세기에 걸친 성취를 10세기 칼리파국에 모두 귀속하지 않는다.
  12. NYU ISAW — 마디나트 알자흐라 전시. 2024~2025년 기록이 국제적인 궁정 환경과 알하캄·자파르의 이름이 있는 연대 명문 아치를 뒷받침한다. 종료된 전시의 역사 자료로 사용한다.
  13. 코르도바 대성당 참사회 — 미흐라브. 기도 방향을 나타내는 기능, 작은 팔각형 방, 조개껍데기 모양 돔과 마크수라 구역을 뒷받침한다. 용어를 특정 구조에 연결한다.